2015 3 2015. 3. 20. 09:27

유엔 천안함 성명은 한국, 중국 입장을 함께 엮은 것일 것
다음엔 6자회담 국면… 외교 실패 논쟁 말고 국론 통일, 현실 인식을
베이징에서 남쪽으로 2시간가량 고속도로를 달리면 바오딩(保定)시에 이른다. 얼른 보면 성장 중국의 활기를 잘 보여주는 인구 100만의 평범한 도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각별한 인연의 도시다. 한말(韓末) 대원군이 임오군란(1882)의 배후 주모자라는 이유로 붙잡혀 와서 언제 돌아갈지 모르는 답답함과 좌절 속에서 난(蘭)을 치며 유폐생활을 보낸 곳이다. 이홍장이 최장수 총독을 지냈던 직예총독부는 지금도 박물관으로 남아 있고 멀지 않은 곳에 대원군이 3년 동안 힘들게 거처하던 건물이 쇠락한 모습으로 서 있다.

대원군의 유폐는 당시 국론의 분열과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 각축의 잘못된 만남 때문이었다. 1882년 개혁개방의 정책 우선순위와 속도에 입장을 달리하는 척화(斥和)와 개화(開化)세력의 정치적 분열이 심화되는 속에서 대원군은 임오군란을 계기로 척화세력의 권토중래(捲土重來)를 33일 동안 시도했다. 그러나 천하질서를 주도했던 중국은 근대 국제질서의 첨병이었던 일본의 군사적 개입을 막기 위해서 군란의 중심에 서 있는 대원군을 무대에서 끌어내렸다.

120년 전 비극의 현장을 착잡한 심정으로 돌아본 다음 날 천안함 사건을 어떻게 풀 것인가에 대해 중국 전문가들과 머리를 맞대고 하루 종일 진지한 얘기를 나눴다. 세월은 흘렀건만 문제의 기본 골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사건에 대한 국론은 분열된 채 중국과 미국은 21세기 천하질서 통치경쟁의 틀에서 사건을 다루고 있다. 사태의 진전을 예상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유엔의 안보리 의장 성명은 결국 한국의 합동조사보고서 내용과 중국 정부의 공식 견해를 함께 엮어서 마련될 것이다. 동시에 한·미 합동해상훈련은 중국과 정면충돌하지 않는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다. 그리고 국면의 중심은 천안함 사건에서 6자회담 주최로 빠르게 넘어갈 것이다.

무대가 빠르게 바뀌는 속에서 한국이 해야 할 가장 급한 일은 국론 통일이다. 의장 성명 이후 유엔외교의 성공과 실패 시비로 여야가 시간을 낭비한다면 소탐대실(小貪大失)의 비극을 겪게 될 것이다. 우선 급한 것은 선(先) 천안함 사건 해결 후(後) 6자회담 대신 천안함 사건 해결과 6자회담 개최의 병행 추진이다. 천안함 사건의 사과, 관련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 약속의 지속적 요구와 함께 실질적 성과를 거둘 수 있는 6자회담의 조속한 개최를 병행 추진할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북한이 최근 김정일 위원장의 중국 방문 때까지 보여 준 자세를 넘어서 문제해결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참여다.

국론 통일의 다음 단계는 천안함 사건의 궁극적 해결이 성공적인 포스트 김정일 체제의 구축에서 비로소 가능하다는 현실 인식이다. 김정일 선군정치가 계속되는 한 제2, 제3의 천안함 사건 가능성을 배제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햇볕과 반(反)햇볕정책의 비생산적인 논쟁을 벗어나서 선군(先軍) 대신 선경(先經)정치를 기반으로 21세기 선진 국가를 건설하려는 포스트 김정일 체제의 구축을 위해서는 어떤 안과 밖의 노력이 필요한가를 진지하게 논의할 때다. 포스트 김정일 체제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눈앞에 다가왔다. 사실상 북한형 인수위원회를 가동해야 할 때다. 60여년 동안 두 번째 찾아온 귀한 기회를 선군정치의 유훈통치로 잃어버리지 않도록 도울 방도를 찾아야 한다. 이것이 진정으로 원칙 있는 햇볕정책이다.

국론통일의 마지막 완성은 남북통일을 위한 천하통일의 안목 키우기다. 대원군의 유폐부터 천안함 사건에 이르기까지 한반도 문제는 안의 문제인 동시에 밖의 문제라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안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밖의 문제를 해결할 줄 알아야 한다. 남북통일을 위해서는 구태의연한 친미(親美)와 친중(親中)의 이분법적 논쟁을 버리고 21세기 천하질서의 통치방법을 새롭게 고민해야 한다. 남북통일은 천하통일의 안목 없이는 불가능하다. 21세기 천하질서는 더 이상 자강(自彊)과 세력균형의 원칙만으로 움직이고 있지 않다. 복합적 그물망 짜기라는 새로운 원칙이 함께 움직이고 있다. 우리도 전통적 한·미·일 그물망 짜기의 심화와 함께 새롭게 등장한 한·중 그물망을 단단하게 넓혀 나가는 21세기 신(新)동맹정책을 구사할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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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2015. 3. 15. 09:31

강연 맡은 하영선 교수

"밴쿠버의 '젊은 그들'은 세계를 놀라게 했는데, 여의도의 '늙은 그들'은 여전히 세종시 문제로 티격태격 싸움만 벌이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새로운 시대를 엮어나갈 비전이나 실천력이 있는 주도 집단이 없어요. 당대 현실 속에서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꿈을 가졌던 '젊은 그들'을 우리 전통에서 찾아볼 수 없을까, 미래의 '젊은 우리'를 만들려면 먼저 우리 역사 속에서 꿈을 가졌던 선각자들의 지적 노력을 훑어봐야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어요."

하영선(63) 서울대 교수는 1979년 미국 워싱턴대에서 한국 핵문제로 박사논문을 쓴 뒤 북핵문제와 군사론·평화론 등을 연구해온 국제정치학자이다. 그런 그가 18세기부터 최근까지 우리 역사에서 시대적 과제와 사상적으로 씨름했던 지식인들의 지적 노력을 집중조명하는 연속 강좌 '역사 속의 젊은 그들: 18세기 실학파에서 21세기 복합파까지'를 시작했다. 지난 3일부터 매주 수요일과 월요일에 총 8회에 걸쳐 연암 박지원·다산 정약용·환재 박규수·구당 유길준· 김양수·민세 안재홍·동주 이용희 등 당대 최고 지식인들의 대내외 인식을 다룬다.

하 교수는 "이들은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꿈을 안고 담론을 펼쳤던 사람들"이라고 했다. "연암은 북벌론(北伐論)의 대상이던 청나라가 오랑캐가 아니라 명나라의 장점을 이어받은 명·청의 하이브리드였다는 사실을 파악했고, 민세는 일제시대 사쿠라로 몰릴 위험을 각오하면서 민족주의와 세계주의의 융합을 시도했습니다. 이들은 복합(complexity)적 실천을 보여준 사람들이고, 21세기는 복합적 사고가 절실하게 필요한 시대입니다."

강의 대상 중 2대 국회의원을 지낸 김양수(1896~1969)는 일반인에겐 이름조차 생소한 인물이다. 하 교수는 1920년대 조선·동아일보 논설위원을 지낸 김양수를 "식민지 시기에 나온 국제정치론 가운데 최고이며, 당대 국제정치의 현실을 꿰뚫어본 탁견"으로 높이 평가했다. 김양수는 1920·1930년대 국제정치학의 대세를 장악하고 있던 '국제협조론'이 깨질 수밖에 없고, 이것이 깨져야 조선이 독립할 가능성이 높다는 논설을 신문·잡지에 썼다.

하 교수는 "19세기 후반 일본의 후쿠자와 유키치가 《문명론의 개략》을 통해 문명화의 길을 제시했을 때 한국의 유길준이나 중국의 양계초 같은 지식인들이 관심을 가졌지만 20세기 후반 들어 일본은 담론을 이끌지 못하고 있다"면서 "중국도 당분간 근대의 수준을 뛰어넘는 담론을 내놓지 못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앞으로 30년은 한국이 동아시아의 담론을 이끌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가 아닌가 싶다"고 전망했다.

이번 연속 강좌를 "미래를 위한 과거 복원 성격이 강하다"고 성격지은 하 교수는 "뉴욕타임스의 보도처럼 김연아 선수의 피겨 스케이팅은 기술과 예술이 결합된 새로운 글로벌 스탠더드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는데, 우리가 세계에 이런 글로벌 스탠더드를 내놓은 적이 얼마나 있느냐"고 물었다. 하 교수는 "그러나 이번 방송 중계는 애국심에 호소하는 19·20세기에 머문 중계였다"면서 "한국인으로 당당하게 살면서도 세계인으로 자리잡을 수 있는, 두 개의 정체성을 자연스레 보여 줄 수 있는 'C(Complexity)세대'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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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3 2015. 3. 14. 09:34

하영선 서울대 교수·국제정치학 유엔 천안함 성명은 한국, 중국 입장을 함께 엮은 것일 것
다음엔 6자회담 국면… 외교 실패 논쟁 말고 국론 통일, 현실 인식을
베이징에서 남쪽으로 2시간가량 고속도로를 달리면 바오딩(保定)시에 이른다. 얼른 보면 성장 중국의 활기를 잘 보여주는 인구 100만의 평범한 도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각별한 인연의 도시다. 한말(韓末) 대원군이 임오군란(1882)의 배후 주모자라는 이유로 붙잡혀 와서 언제 돌아갈지 모르는 답답함과 좌절 속에서 난(蘭)을 치며 유폐생활을 보낸 곳이다. 이홍장이 최장수 총독을 지냈던 직예총독부는 지금도 박물관으로 남아 있고 멀지 않은 곳에 대원군이 3년 동안 힘들게 거처하던 건물이 쇠락한 모습으로 서 있다.

대원군의 유폐는 당시 국론의 분열과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 각축의 잘못된 만남 때문이었다. 1882년 개혁개방의 정책 우선순위와 속도에 입장을 달리하는 척화(斥和)와 개화(開化)세력의 정치적 분열이 심화되는 속에서 대원군은 임오군란을 계기로 척화세력의 권토중래(捲土重來)를 33일 동안 시도했다. 그러나 천하질서를 주도했던 중국은 근대 국제질서의 첨병이었던 일본의 군사적 개입을 막기 위해서 군란의 중심에 서 있는 대원군을 무대에서 끌어내렸다.

120년 전 비극의 현장을 착잡한 심정으로 돌아본 다음 날 천안함 사건을 어떻게 풀 것인가에 대해 중국 전문가들과 머리를 맞대고 하루 종일 진지한 얘기를 나눴다. 세월은 흘렀건만 문제의 기본 골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사건에 대한 국론은 분열된 채 중국과 미국은 21세기 천하질서 통치경쟁의 틀에서 사건을 다루고 있다. 사태의 진전을 예상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유엔의 안보리 의장 성명은 결국 한국의 합동조사보고서 내용과 중국 정부의 공식 견해를 함께 엮어서 마련될 것이다. 동시에 한·미 합동해상훈련은 중국과 정면충돌하지 않는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다. 그리고 국면의 중심은 천안함 사건에서 6자회담 주최로 빠르게 넘어갈 것이다.

무대가 빠르게 바뀌는 속에서 한국이 해야 할 가장 급한 일은 국론 통일이다. 의장 성명 이후 유엔외교의 성공과 실패 시비로 여야가 시간을 낭비한다면 소탐대실(小貪大失)의 비극을 겪게 될 것이다. 우선 급한 것은 선(先) 천안함 사건 해결 후(後) 6자회담 대신 천안함 사건 해결과 6자회담 개최의 병행 추진이다. 천안함 사건의 사과, 관련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 약속의 지속적 요구와 함께 실질적 성과를 거둘 수 있는 6자회담의 조속한 개최를 병행 추진할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북한이 최근 김정일 위원장의 중국 방문 때까지 보여 준 자세를 넘어서 문제해결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참여다.

국론 통일의 다음 단계는 천안함 사건의 궁극적 해결이 성공적인 포스트 김정일 체제의 구축에서 비로소 가능하다는 현실 인식이다. 김정일 선군정치가 계속되는 한 제2, 제3의 천안함 사건 가능성을 배제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햇볕과 반(反)햇볕정책의 비생산적인 논쟁을 벗어나서 선군(先軍) 대신 선경(先經)정치를 기반으로 21세기 선진 국가를 건설하려는 포스트 김정일 체제의 구축을 위해서는 어떤 안과 밖의 노력이 필요한가를 진지하게 논의할 때다. 포스트 김정일 체제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눈앞에 다가왔다. 사실상 북한형 인수위원회를 가동해야 할 때다. 60여년 동안 두 번째 찾아온 귀한 기회를 선군정치의 유훈통치로 잃어버리지 않도록 도울 방도를 찾아야 한다. 이것이 진정으로 원칙 있는 햇볕정책이다.

국론통일의 마지막 완성은 남북통일을 위한 천하통일의 안목 키우기다. 대원군의 유폐부터 천안함 사건에 이르기까지 한반도 문제는 안의 문제인 동시에 밖의 문제라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안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밖의 문제를 해결할 줄 알아야 한다. 남북통일을 위해서는 구태의연한 친미(親美)와 친중(親中)의 이분법적 논쟁을 버리고 21세기 천하질서의 통치방법을 새롭게 고민해야 한다. 남북통일은 천하통일의 안목 없이는 불가능하다. 21세기 천하질서는 더 이상 자강(自彊)과 세력균형의 원칙만으로 움직이고 있지 않다. 복합적 그물망 짜기라는 새로운 원칙이 함께 움직이고 있다. 우리도 전통적 한·미·일 그물망 짜기의 심화와 함께 새롭게 등장한 한·중 그물망을 단단하게 넓혀 나가는 21세기 신(新)동맹정책을 구사할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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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3 2015. 3. 13. 00:30

“김정은이 처한 딜레마는 조선 말 고종 때와 비슷”

 

 

 

 

 

“북한이 핵과 경제건설을 함께 추구하는 현재의 ‘병진론(竝進論)’이 아니라 핵을 뺀 비핵안보와 경제건설을 추구하는 ‘병진론 2’로 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한 국제적 공진(共進·coevolution)이 있어야 하며 우리가 그 중심이 돼야 합니다. 미국과 중국이 새로운 동아시아에 대한 ‘꿈(dream)’을 최근 부쩍 이야기하는데,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거대한 건축주가 자신들의 청사진을 바탕으로 동아시아 신질서를 짜나갈 때 대한민국이라는 ‘주니어 디자이너’와 함께 신질서를 짜는 것이 필요하고 중요하다는 걸 인식시켜야 합니다.”

지난 4월 23일 서울 중구 을지로 삼풍빌딩에 있는 동아시아연구원(EAI) 회의실에서 만난 하영선(66) 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서울대 명예교수)은 박근혜 대통령이 첫 정상외교 무대에 나서는 이번 방미(5월 5~10일)를 활용해 미국과 중국의 ‘꿈’을 능가하는 ‘대한민국의 꿈’을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8월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직을 정년퇴임한 하 이사장은 작년부터 국내의 대표적 ‘독립 싱크탱크’인 동아시아연구원(원장 이숙종 성균관대 교수)을 이끌어오며 한반도 문제에 대해 깊이있는 담론을 펼쳐왔다. 하 이사장은 2001년 9·11 테러 이후 국제사회를 ‘복합 변환의 세기’로 규정하며 복합 그물망(네트워크) 정책 마련을 주장해 왔다.

‘나쁜 행동에 보상하지 않으며, 헛된 약속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원칙에서 보듯 미국은 북한에 손을 내밀었다가 몇 차례 뺨을 맞은 것에 대해 굉장히 힘들어하고 아프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주목한 것은 지난해 11월 19일 오바마 대통령이 미얀마를 방문해 양곤대학에서 한 연설입니다. 당시 오바마는 ‘우리는 과거의 감옥에 갇혀 있을 필요가 없다. 우리는 미래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며 북한 지도부를 향해 ‘핵무기를 버리고 평화와 발전의 길을 택하라. 그러면 미국이 내미는 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고 밝혔습니다.

 

 1기 행정부 때 베이징에 가서 손을 내밀었다가 뺨을 맞은 후 공화당 포지션을 지난 4년간 유지하던 오바마가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북한에 첫 번째 신호를 보낸 겁니다. 하지만 북한은 이 신호에 대해서도 여전히 미사일로 답을 했습니다. 북한이 우여곡절 끝에 약속을 깨는 과정이 여러 번 진행되었기 때문에 말을 두 번 하지 않겠다는 게 미국의 입장입니다. 북한이 단순한 의미의 레토릭을 구사해서는 실질적 협상에 들어가기가 매우 어렵다는 의미입니다.”

 

하 이사장은 중국 역시 대한반도 원칙은 변한 게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중국의 대한반도 정책과 입장이 명확하게 드러난 것은 지난 2월 12일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발표된 공식 성명입니다. 당시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고, 동북아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며, 협상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3원칙을 밝혔습니다. 이러한 3원칙은 지난 3월 20일 시진핑 주석이 박근혜 대통령과 통화하면서도, 왕이(王毅) 외교부장이 지난 4월 13일 케리 미 국무장관과 만났을 때도 견지됐습니다.”

상황이 지극히 어렵지만 하 이사장이 오히려 주목하는 것은 북한의 입장 변화 가능성이다. 하 이사장은 “내가 보기에 미국이 바뀔 가능성은 없고 북한이 핵을 유지하는 한 미국이 도와줄 수 없다는 입장도 명확하다”며 “결국 미국과 중국의 원칙을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것은 북한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 지점에서 하 이사장은 북한이 최근 ‘핵·경제 병진론’을 꺼내든 배경과 함의를 주도면밀하게 따져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이 미사일을 쏜 작년 12월 12일부터 3차 핵실험을 한 2월 12일까지 내놓은 공식적 성명이나 발표를 유심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일단 이를 보면 미사일을 쏘고 핵실험을 한 자신들의 입장을 설명하는 선군(先軍) 언어가 등장합니다.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에 따라서 불가피하게, 소위 자주권의 일환으로 그런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은 선군정치를 내세운 아버지 세대 때의 설명 방식 그대로입니다. 하지만 또 한 가지 언어가 등장한다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핵무기를 개발해 이제 자주생존권을 획득했기 때문에 자신들도 경제건설이나 인민의 생활진작에 나서려 했는데, (미국이) 제재에 나서고 있다는 표현을 씁니다. 이 말은 북한도 이제 투 트랙(two track)으로 간다는 의미입니다. 내가 ‘복합론’이라는 말을 많이 했기 때문에 농담 삼아 ‘북한표 복합론’이 등장했다고 얘기하는데, 자주생존권을 위해 핵을 앞세우는 것과 함께 경제건설이라는 두 번째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공산주의 사회에서 ‘노선’이라는 것은 아무 데나 쓰는 게 아닙니다. 정책 결정의 최고위층에서 나온 것이고 이건 함부로 바꿀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자세한 경위는 알 수 없지만 김정은이 등장하고부터 노선에 대한 고민이 있었고 핵을 앞세운 비대칭적 차원에서나마 병진론이 노선으로 결정됐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입니다. 병진론을 들고나온 것 자체가 굉장히 조심스러운 변화의 시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실제 북한은 지난해 말부터 최근까지 ‘병진노선’을 계속 강조해 오고 있다. 핵·경제 병진론을 공식화한 것은 지난 3월 31일 열린 조선노동당 중앙위 3월 전원회의로, 여기서는 ‘전원회의는 조성된 정세와 우리 혁명발전의 합법적 요구에 맞게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을 병진시킬 데 대한 새로운 전략적 노선을 제시하였다’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 병진노선은 위대한 대원수님들께서 제시하시고 철저히 구현하여 오신 독창적인 경제국방 병진노선의 빛나는 계승이며 새로운 높은 단계에로의 심화발전이다’ 등의 발표가 있었다.

이에 앞서 김정은은 지난 1월 26일 ‘국가안전 및 대외일군협의회 지도’ 자리에서도 “자위적 전쟁억제력에 토대하여 이제는 인민들이 더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도록 경제건설에 집중하려던 우리의 노력에는 엄중한 난관이 조성되었다”고 말했고, 북한 외교부 대변인은 2월 12일 담화를 통해 “자위적인 핵억제력에 의거하여 경제건설과 인민생활 향상에 힘을 집중하려던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주장했다. 하 이사장은 병진론을 꺼내든 이상 북한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중대한 갈림길에 섰다고 지적했다.

하 이사장은 현재 김정은 체제가 처한 딜레마가 조선 말 고종의 딜레마와 매우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1863년 12세의 나이로 등극한 고종이 10년간의 아버지 섭정을 끝내고 친정체제에 들어간 것이 1873년입니다. 아버지가 물러났지만 체제의 운명이 걸린 개화를 결정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지금 북한의 선군정치 분위기처럼 대원군 세력이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때 안팎을 설득해 나간 게 박규수입니다.

 

안으로 고종의 귀를 붙들고 있는 그가 매일 대원군을 찾아가 일본과의 수교 필요성을 설득했습니다. 대원군에게는 ‘일본과는 구교(舊校)가 있었기 때문에 서양과의 근대 조약과 달리 구교를 다시 부활하는 것이다’라고 설득했고, 고종에게는 ‘수교하지 않으면 일본이 결국 군사력으로 해결을 보려고 할 것이기 때문에 일단 조약을 맺어 우리도 빨리 부강해질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설득했습니다. 일종의 이중 플레이를 한 것이고, 안팎으로 두 개의 싸움을 한 셈입니다. 그때 개화하는 것이나 지금 북한이 문을 여는 것이나 비슷하다고 봅니다.”

이와 관련 하 이사장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조언 형태로 다음과 같은 우리의 기본원칙 세 가지를 제안했다. “첫째는 북한이 핵을 가져도 소용없다는 느낌을 확실하게 줄 수 있도록 우리 스스로 북한의 무력에 맞서는 1차적 억지 시스템을 갖춰야 합니다. 최근 국방부에서 얘기가 나오지만 가까운 시일 내에 한국형 MD를 구축해야 하고, 재래식 무기 체계에 의한 억지력 확보에도 전력투구해야 합니다. 미국이 제공하는 전술 전략 핵 억지력도 우리가 필요로 할 때 미국이 다른 판단을 하지 않고 도와줄 수 있도록 치밀한 공조 프로세스를 구축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북을 병진론 2로 이끈다는 것이 확실한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북핵을 막아야 한다’는 막연한 목표로는 안 됩니다. 이를 위해서는 북에 대한 경제적 대응도 필요합니다. 북은 수령경제, 군사경제, 인민경제로 나눠져 있는데, 인민경제에 도움이 되는 인도적 지원은 유지하되 수령경제를 목표로 하는 금융제재와 핵 미사일 관련 물자의 컨트롤 등은 우리도 확실하게 해나가야 합니다. 병진론 1을 들고나온 북의 정치권력이 굉장한 비용을 지불한다는 사실을 느끼게 해야 합니다.

세 번째 원칙은 북이 결국 병진론 2로 가야만 북 스스로와 한국과 동아시아가 산다는 차원에서 병진론 2와 국제 공진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인식을 갖고 그런 공식에 맞는 우리의 정치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북한의 병진론 2와 전 세계적인 코에볼루션(co-evolution·공진)이 같이 가는 방향으로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우리가 이 같은 3원칙을 갖고 미국의 4원칙, 중국의 3원칙과 같이 짜여지는 334 전략으로 북을 병진론 2로 이끌어야 한다고 구체적으로 얘기해야 오바마를 설득할 수 있습니다.”

하 이사장은 “동아시아는 미국의 케리 장관이 얘기한 ‘퍼시픽 드림(Pacific Dream)’과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들고나온 ‘중국몽(中國夢)’이 충돌하는 곳으로 미국이 사용하는 말인 아키텍처, 즉 신질서의 건축이 이미 시도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과 중국의 향후 관계는 이미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로드맵이 짜여 있습니다. 싸울 것은 싸우고 협력할 것은 협력한다는 구체적 그림이 그려져 있다는 얘기입니다. 군사적으로 미·중은 2049년까지는 충돌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경제는 싫어도 협력할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같은 부분에서는 상당한 경쟁적 요소가 등장한다는 데 대해 의견이 모아진 상태입니다.

 

이런 미·중 관계 속에서 우리는 G2의 꿈이 아닌 우리의 꿈을 꿔야 합니다. 이제 세계는 강대국이 질서를 단독 디자인하는 시대는 지났고 주니어 디자이너와 공동 파트너십이 있어야 새 시대를 열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해야 합니다. 동아시아의 신질서는 미·중을 넘어서서 복합 네트워크로 짜야 합니다.”

 

하 이사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는 그런 차원에서 우리의 꿈을 이야기하는 첫 무대가 되어야 한다”며 “거대한 꿈을 꾸는 G2의 틈바구니에서 경제력과 군사력이 떨어지는 우리로서는 더욱 더 충실히 꿈을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료 :  조선일보(정장열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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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3 2015. 3. 12. 12:16

   2005년 한국 정부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한국 기독교는 기독교가 한국에 전파된 이래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2005 인구 주택 총조사 결과(인구부문) 한국교회는 우리 사회 종교인구가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10년간 성장률 '-1.6%'을 기록했다. 불교는 3.9%로 소폭 증가했으며, 가톨릭은 지난 10년 사이에 74.4%라고 하는 급 성장을 한 것으로 보고됐다. 인구로 보면 우리나라 전체인구는 1995년에 44554천명에서 2000년에 46136천명으로 증가한데 이어 2005년에는 2.5%의 증가율을 보여 47279천명으로 확인됐다. 이 중에 종교 인구는 1995년에 22598천명으로 전체 인구의 50.7%를 차지했으나, 2005년 조사 결과는 24971천명으로 인구 자연 증가 범위를 뛰어 넘어 전체인구의 53.1%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 10년 사이에 10.5%가 증가한 수치이다. 최근에 사회 봉사활동에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를 받고 있는 원불교의 경우도 49.6%의 성장률을 보였다. 그러나 기독교(개신교) 인구는 10년 전인 1995년까지 성장세를 보여 전체인구의 19.7%876만 명을 기록했으나, 이번에 발표된 조사 결과에서는 8616천명으로 전체 인구의 18.3%144천명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를 증감률로 보면 -1.6%를 기록했다. 이 결과는 인구 자연 증가분과 함께 분석한다면 문제가 더 심각하다

(http://kidok.net/madang/content.php).

   이러한 심각한 상황에 처한 한국 교회 안의 문제의 원인에 대해서 많은 연구와 조사가 이루어졌고, 많은 진단이 나왔다. 본 논문에서는 이러한 한국 교회의 심각한 상황의 원인 중 중요한 것이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갈등이라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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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3 2015. 3. 12. 01:30

애플, 레드 애플, 과일, 빨강, 건강한, 비타민, 프리슈, 신의 축복이 있기를, 익은,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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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2015. 3. 10. 16:03

 

보이스티누 보스크레세- 그리스도는 진실로 살아나셨습니다.

 

동부 유럽과 러시아에 살고있는 수 천만 명의 사람들은 부활절 인사로 이 표현을 쓴다. 그것은 공산주의자들도 마찬가지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의례적인 인사이기때문이다. 하지만 부활이요, 생명이신 그 분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 말은 공허하고, 무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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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2015. 3. 10. 15:45

십자가를 붙잡기 위해서 분투를 해야한다.

-안드레스 노리에가

 

자기를 부정하는 것은 자발적이며 의식적인 행위이다. 우리는 단호한 결정을 하여, 하나님께 완벽하고도 전적인 헌신을 하는 것이다. 그럼으로 우리의 인생에 대한 그분의 계획을 받으며, 모든 권리를 그분께 양도한다. 그분은 그분의 계획에 맞추어 그리고 우리의 인생 목적에 맞추어 인도하신다.

자기를 부정하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실패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고, 성공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또한 자신을 파멸시키기는 것도 아니며, 오히려 우리의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 그 최고의 규범으로 이끌려가는 길의 문을 여는 것이다.

 

예수님을 따르는 데에는 과정이 필요하다. 십자가를 붙잡기 위해서는 분투를 해야한다. "그들이 나를 대적한 것처럼 너희도 대적할 것이다."(15:24) 주님의 말씀은 십자가를 지신 주님처럼 우리도 같은 대우를 받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으로 기뻐해야한다. 왜냐하면 주님의 영광이 드러날 때에 크게 기뻐하고 또 즐거워할 것이기때문이다.

 

주님을 따르는 삶의 최종 결과는 십자가의 죽음이 아니다. 그것은 부활을 통한 영생이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누구든지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22:25)

 

*안드레스 노리에가는 쿠바의 목사이다.

 

번역-이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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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3 2015. 3. 10. 15:43

증오했던 그 십자가를 걸기까지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 이유는 잘 설명할 수 없지만, 핫산은 자신이 기독교인들을 증오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핫산은 항상 기독교인들이 고통당하는 것을 보고싶어했고, 그래야 속이 시원했습니다. 회교 학교 친구들도 그런 마음은 가지고 있지만, 누구도 핫산만큼 그렇게 강렬하게 원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의 가족은 중동에서 보다 근본주의적인 나라에 살고있기는 하지만, 회교적인 기준에서볼 때 그렇게까지 종교적이라고 볼 수는 없는 가정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근처에 있는 회교 사원에서 열리는 금요 예배에 자주 가지 않는 편이었고, 그의 어머니는 종교적인 의무를 준수시키기보다는, 아이들이 보다 나은 교육을 받도록 하는데 관심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회교도였습니다. 만일 당신이 회교도로 태어났다면, 당신은 회교도로 죽어야합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기독교 가정에 태어나는 것은 끔직한 일이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슬람에서 기독교로 개종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조차 없는 일입니다. 핫산의 부모님은 핫산에게 기독교인들은 그림이 그려진 종이를 향해 기도를 하고, 삼위일체라고 하는 세 신을 섬긴다고, 그 세 신은 하나님 아버지, 마리아와 예수라고 설명해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또한 그 자신이 스스로 무엇이 옳고 그른지 스스로 그 차이를 생각해보도록 가르쳤습니다.

 

기독교인들이 십자가 목걸이를 걸고 있는 것을 볼 때마다 핫산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화가 났습니다. "기독교인들이 십자가를 목에 걸고 있는 걸 볼 때, 나는 그냥 확 다가가서 잡아뜯고 싶었습니다."

 

십자가는 그가 가장 싫어한 것입니다. 핫산은 어떻게 하면 기독교인들을 괴롭힐까 하는 궁리를 하는데 골몰했습니다. 그는 친구들과 함께 기독교인 가족들 뒤를 쫓아가서 죽여버리겠다고 위협하고 겁주는 일을 하고는 했습니다. 학교에서 그는 기독교인들이 받아야하는 여러 고통들, 욕설, 모든 활동에서 말석을 차지해야하고, 심지어는 신체에 대한 공격을 받는 것들도 정당하며, 항상 있어야한다고 느꼈습니다.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이 옳다는 데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결국 이슬람이 옳으니까요. 기독교인들은 나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대해서도 생각을 지우려고 하지만, 자꾸 생각나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또 기독교인들이 공격당할 때 보여주는 그 모습도 뭔가가 있는 것 같이 보였습니다. 회교로 개종하기만 하면 훨씬 쉬운 삶을 살 수 있을 텐데. 이미 많이들 그렇게 했고, 그래서 힘든 삶을 살지 않아도 된 것을 핫산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핫산에게는 내적인 갈등이 있었지만 그럴 수록 그는 주변에서 기독교인을 생각나게하는 모든 것을 파괴하려고 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모인다는 소리를 들으면 그는 모임을 방해하기위해 매번 독창적인 수법을 고안해내고는 했습니다. 한번은 기독교인들이 모인 기도회에 화염병을 던진 적도 있다.

 

어느날 밤 핫산은 꿈을 꾸었다. 그것은 심란하게 하는 꿈이었다. 그 꿈은 그의 삶을 통채로 바꿀 수도 있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 꿈 속에서 그는 십자가 목걸이를 하고 있는 사람이었으며, 그가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너는 왜 그것을 하고있니? 너는 그들처럼 된 거로구나 그렇지"하고 물어보았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났지만, 그 꿈은 너무나 생생해서 잊혀지지 않았다. 상세한 부분 하나 하나까지 다 떠올랐다. 그는 예수가 그 십자가에 죽었다는 것, 그리고 그를 위해 죽었다는 것을 알았다.

 

핫산은 즉시 그가 여러번 위협했지만, 한번도 위축된 적이 없던 가까이에 사는 기독교인을 찾아갔다. 그에게 가서, 성경 책을 한권 구해줄 수 없냐고 간청했다. 그 기독교인은 의아해하면서 물어보았다. "왜 성경책을 원하지, 성경책으로 나를 때리려고 하는건 아닌가?"

 

아니야! 나는 지금 진지해. 지난밤 꿈을 꿨어. 꿈 속에서 나는 십자가를 하고 있었네. 나는 성경책을 구해야해. 도와줄 수 있나? 그 기독교인은 핫산의 어조에서 진지함과 간곡함을 발견했다. 핫산은 성경책을 구했다. 그리고 매일 매일 성경을 읽었다. 부모에게는 들키지 않게 조심하면서 한 장 한 장 파고들어갔다. 그것은 평생 사막에서 살던 사람에게 주어진 생수와도 같았다. 그가 읽은 말씀을 통해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다.

 

몇 주 동안, 핫산은 자신의 모든 생각을 기록했다. 그것은 자신의 새로운 신앙을 분명하게 해주는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그는 비밀리에 기독교 가정들의 사람들과 접촉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그를 만나기를 겁냈다. 왜냐하면 그를 너무나 잘 알고있었기때문이다. 회교도가 다스리는 나라에 사는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가장 보편적인 정서는 두려움이라는 것을 그는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래서 더 많은 시간을 성경을 읽고 거기서 배우고 깨달은 것을 기록하는 데 쓰게되었다.

 

핫산이 주님을 영접한지 6개월이 지났을 때, 그의 모친이 우연히 핫산이 쓴 글을 발견하게 되었다. 숨긴다고 애써서 감추었는데, 들킨 것이다. 모친은 너무나 놀라고 두려워서 남편을 불렀다. 핫산이 그 사실을 모른채 집에 돌아왔을 때, 그는 부친의 얼굴에서 분노와 당혹감을 발견했고, 그가 겁냈던 그 날이 왔음을 알아챌 수 있었다.

 

핫산의 가족에게는 단 하나의 방법밖에는 없었다. 경찰에 알리는 것이다. 박해하던 자가 이제 박해받는 자가 되었다.

오늘 핫산은 그의 부모를 피해 제 3 국에 살고 있다. 물론 그 제 3 국도 여전히 중동의 어떤 나라이다.

 

번역-이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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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3 2015. 3. 10. 15:41

십자가의 방

 

한 젊은이가 힘들고 지쳐서 절망 속에 있었다. 벗어날 길은 하나도 없었다. 그는 무릎꿇고 기도하였다.

 

"주님, 저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요. 이 십자가는 제가 지기에는 너무 무거운 것 같아요."

 

주님이 대답하셨다. "아이야, 만일 그 십자가가 너에게 너무 무겁다면 그것을 이 십자가의 방 안에 내려놓아라. 그리고 그 방 안에서 아무 거나 네가 원하는 십자가를 고르거라."

 

이 청년은 너무나 기뻤다. 그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주님 감사해요."라고 대답했다.

 

십자가의 방 안에는, 많은 십자가들이 있었다. 어떤 것은 너무나 커서 꼭대기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이 청년은 그 방 안 멀리 한쪽 구석에서 제일 작은 십자가를 하나 발견했다. "주님 이게 좋겠어요." 청년은 부끄러워하며 말했다.

 

그리고 주님이 대답하셨다. "아이야, 그것은 네가 방금 놓고간 건데."

 

- 작자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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