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2015. 4. 30. 00:28

첫째로한경직 목사님은 “약함”의 사람이었습니다한경직 목사님은 젊은 시절부터 한 평생 수 많은 고난을 겪으면서 인간의 연약함과 무력함을 절감한 분이었고 또 자기 자신이 얼마나 연약하고 무력한 존재임을 체험한 분이었습니다.그는 두려워하고 절망했으며 때로는 넘어지기도 했습니다그러나 그의 연약함이 오히려 그를 진정한 목회자로 만든 비결이었는지도 모릅니다한경직 목사님이 17세 되던 1919년 평양 영성소학교 교사로 봉직하고 있던 때 일본 고등계 형사들의 혹독한 고문을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그는 고문 당한 후 두려움과 무서움에 떨었다고 고백했습니다자신의 무력함을 비관하기도 했습니다한경직 목사님이 27세 되던 1929년 프린스턴 신학교를 졸업하고 예일 대학 박사과정에 진학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그 때 폐결핵 3기라는 진단을 받고 그는 또 한번 인간의 연약함과 무력함을 절감했습니다진학은 물론 인생 자체를 포기해야 할 지도 모른다는 절망감과 위기감을 느꼈습니다그는 자신의 의지도 건강도 아무 것도 믿을 것이 되지 못한다는 절망감을 경험한 것이었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이 신의주 제이교회와 영락교회의 목회 시절에도 약함을 드러냈고 6.25 전쟁 중에도 약함을 드러냈고 군사독재 시절에도 약함을 드러냈습니다한경직 목사님은 그의 생애의 마지막 2년 동안 노환으로 많은 고난과 약함을 체험했습니다한경직 목사님은 어느 대담에서 괴로운 일이 무엇이었느냐는 질문에 "일생을 연약한 몸으로 살아온 것이 제일 괴로움이었지요." 라고 대답한 일이 있습니다마지막 2년 동안 두 다리를 수술하는 고통도 겪었고 말을 잘 하지 못하는 답답함도 당했습니다특히 마지막 6개월 동안은 가래가 너무 끓어서 목에 구멍을 뚫고 지내는 극심한 괴로움도 겪었습니다한 목사님은 저의 손을 붙잡고 "늙는 것이 재미 없어!" 라고 그의 노약의 서글픈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posted by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