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2015. 3. 10. 15:45

십자가를 붙잡기 위해서 분투를 해야한다.

-안드레스 노리에가

 

자기를 부정하는 것은 자발적이며 의식적인 행위이다. 우리는 단호한 결정을 하여, 하나님께 완벽하고도 전적인 헌신을 하는 것이다. 그럼으로 우리의 인생에 대한 그분의 계획을 받으며, 모든 권리를 그분께 양도한다. 그분은 그분의 계획에 맞추어 그리고 우리의 인생 목적에 맞추어 인도하신다.

자기를 부정하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실패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고, 성공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또한 자신을 파멸시키기는 것도 아니며, 오히려 우리의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 그 최고의 규범으로 이끌려가는 길의 문을 여는 것이다.

 

예수님을 따르는 데에는 과정이 필요하다. 십자가를 붙잡기 위해서는 분투를 해야한다. "그들이 나를 대적한 것처럼 너희도 대적할 것이다."(15:24) 주님의 말씀은 십자가를 지신 주님처럼 우리도 같은 대우를 받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으로 기뻐해야한다. 왜냐하면 주님의 영광이 드러날 때에 크게 기뻐하고 또 즐거워할 것이기때문이다.

 

주님을 따르는 삶의 최종 결과는 십자가의 죽음이 아니다. 그것은 부활을 통한 영생이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누구든지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22:25)

 

*안드레스 노리에가는 쿠바의 목사이다.

 

번역-이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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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3 2015. 3. 10. 15:43

증오했던 그 십자가를 걸기까지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 이유는 잘 설명할 수 없지만, 핫산은 자신이 기독교인들을 증오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핫산은 항상 기독교인들이 고통당하는 것을 보고싶어했고, 그래야 속이 시원했습니다. 회교 학교 친구들도 그런 마음은 가지고 있지만, 누구도 핫산만큼 그렇게 강렬하게 원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의 가족은 중동에서 보다 근본주의적인 나라에 살고있기는 하지만, 회교적인 기준에서볼 때 그렇게까지 종교적이라고 볼 수는 없는 가정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근처에 있는 회교 사원에서 열리는 금요 예배에 자주 가지 않는 편이었고, 그의 어머니는 종교적인 의무를 준수시키기보다는, 아이들이 보다 나은 교육을 받도록 하는데 관심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회교도였습니다. 만일 당신이 회교도로 태어났다면, 당신은 회교도로 죽어야합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기독교 가정에 태어나는 것은 끔직한 일이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슬람에서 기독교로 개종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조차 없는 일입니다. 핫산의 부모님은 핫산에게 기독교인들은 그림이 그려진 종이를 향해 기도를 하고, 삼위일체라고 하는 세 신을 섬긴다고, 그 세 신은 하나님 아버지, 마리아와 예수라고 설명해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또한 그 자신이 스스로 무엇이 옳고 그른지 스스로 그 차이를 생각해보도록 가르쳤습니다.

 

기독교인들이 십자가 목걸이를 걸고 있는 것을 볼 때마다 핫산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화가 났습니다. "기독교인들이 십자가를 목에 걸고 있는 걸 볼 때, 나는 그냥 확 다가가서 잡아뜯고 싶었습니다."

 

십자가는 그가 가장 싫어한 것입니다. 핫산은 어떻게 하면 기독교인들을 괴롭힐까 하는 궁리를 하는데 골몰했습니다. 그는 친구들과 함께 기독교인 가족들 뒤를 쫓아가서 죽여버리겠다고 위협하고 겁주는 일을 하고는 했습니다. 학교에서 그는 기독교인들이 받아야하는 여러 고통들, 욕설, 모든 활동에서 말석을 차지해야하고, 심지어는 신체에 대한 공격을 받는 것들도 정당하며, 항상 있어야한다고 느꼈습니다.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이 옳다는 데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결국 이슬람이 옳으니까요. 기독교인들은 나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대해서도 생각을 지우려고 하지만, 자꾸 생각나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또 기독교인들이 공격당할 때 보여주는 그 모습도 뭔가가 있는 것 같이 보였습니다. 회교로 개종하기만 하면 훨씬 쉬운 삶을 살 수 있을 텐데. 이미 많이들 그렇게 했고, 그래서 힘든 삶을 살지 않아도 된 것을 핫산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핫산에게는 내적인 갈등이 있었지만 그럴 수록 그는 주변에서 기독교인을 생각나게하는 모든 것을 파괴하려고 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모인다는 소리를 들으면 그는 모임을 방해하기위해 매번 독창적인 수법을 고안해내고는 했습니다. 한번은 기독교인들이 모인 기도회에 화염병을 던진 적도 있다.

 

어느날 밤 핫산은 꿈을 꾸었다. 그것은 심란하게 하는 꿈이었다. 그 꿈은 그의 삶을 통채로 바꿀 수도 있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 꿈 속에서 그는 십자가 목걸이를 하고 있는 사람이었으며, 그가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너는 왜 그것을 하고있니? 너는 그들처럼 된 거로구나 그렇지"하고 물어보았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났지만, 그 꿈은 너무나 생생해서 잊혀지지 않았다. 상세한 부분 하나 하나까지 다 떠올랐다. 그는 예수가 그 십자가에 죽었다는 것, 그리고 그를 위해 죽었다는 것을 알았다.

 

핫산은 즉시 그가 여러번 위협했지만, 한번도 위축된 적이 없던 가까이에 사는 기독교인을 찾아갔다. 그에게 가서, 성경 책을 한권 구해줄 수 없냐고 간청했다. 그 기독교인은 의아해하면서 물어보았다. "왜 성경책을 원하지, 성경책으로 나를 때리려고 하는건 아닌가?"

 

아니야! 나는 지금 진지해. 지난밤 꿈을 꿨어. 꿈 속에서 나는 십자가를 하고 있었네. 나는 성경책을 구해야해. 도와줄 수 있나? 그 기독교인은 핫산의 어조에서 진지함과 간곡함을 발견했다. 핫산은 성경책을 구했다. 그리고 매일 매일 성경을 읽었다. 부모에게는 들키지 않게 조심하면서 한 장 한 장 파고들어갔다. 그것은 평생 사막에서 살던 사람에게 주어진 생수와도 같았다. 그가 읽은 말씀을 통해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다.

 

몇 주 동안, 핫산은 자신의 모든 생각을 기록했다. 그것은 자신의 새로운 신앙을 분명하게 해주는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그는 비밀리에 기독교 가정들의 사람들과 접촉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그를 만나기를 겁냈다. 왜냐하면 그를 너무나 잘 알고있었기때문이다. 회교도가 다스리는 나라에 사는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가장 보편적인 정서는 두려움이라는 것을 그는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래서 더 많은 시간을 성경을 읽고 거기서 배우고 깨달은 것을 기록하는 데 쓰게되었다.

 

핫산이 주님을 영접한지 6개월이 지났을 때, 그의 모친이 우연히 핫산이 쓴 글을 발견하게 되었다. 숨긴다고 애써서 감추었는데, 들킨 것이다. 모친은 너무나 놀라고 두려워서 남편을 불렀다. 핫산이 그 사실을 모른채 집에 돌아왔을 때, 그는 부친의 얼굴에서 분노와 당혹감을 발견했고, 그가 겁냈던 그 날이 왔음을 알아챌 수 있었다.

 

핫산의 가족에게는 단 하나의 방법밖에는 없었다. 경찰에 알리는 것이다. 박해하던 자가 이제 박해받는 자가 되었다.

오늘 핫산은 그의 부모를 피해 제 3 국에 살고 있다. 물론 그 제 3 국도 여전히 중동의 어떤 나라이다.

 

번역-이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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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3 2015. 3. 10. 15:41

십자가의 방

 

한 젊은이가 힘들고 지쳐서 절망 속에 있었다. 벗어날 길은 하나도 없었다. 그는 무릎꿇고 기도하였다.

 

"주님, 저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요. 이 십자가는 제가 지기에는 너무 무거운 것 같아요."

 

주님이 대답하셨다. "아이야, 만일 그 십자가가 너에게 너무 무겁다면 그것을 이 십자가의 방 안에 내려놓아라. 그리고 그 방 안에서 아무 거나 네가 원하는 십자가를 고르거라."

 

이 청년은 너무나 기뻤다. 그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주님 감사해요."라고 대답했다.

 

십자가의 방 안에는, 많은 십자가들이 있었다. 어떤 것은 너무나 커서 꼭대기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이 청년은 그 방 안 멀리 한쪽 구석에서 제일 작은 십자가를 하나 발견했다. "주님 이게 좋겠어요." 청년은 부끄러워하며 말했다.

 

그리고 주님이 대답하셨다. "아이야, 그것은 네가 방금 놓고간 건데."

 

- 작자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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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2015. 3. 10. 15:34

빌리 그래함 목사 

 

 "예수님은 우리가 반드시 십자가를 져야한다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학교에 있을 때, 우리가 일을 할 때, 우리가 집에 있을 때,

 

사람들이 우리를 조롱하고, 박해할 지라도

 

우리는 그리스도의 자리를 지켜드려야한다.

 

그것이 우리의 십자가이다."

 

주님께서는 "내 십자가를 지고"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역사적 의미와 사회적인 배경에서 생각해볼 때,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 선포가 유대인들에게는 거침돌이요, 추문이 되고, 이방인에게는 어리석은 것이 된다고 지적한 것은 명백하게 논리적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 십자가는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나타내신 행위이며, 그 증거입니다.

  번역-이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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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3 2015. 3. 10. 15:31

중국의 신자는 시와 같은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십자가에 달려서

머리를 숙이고

피가 쏟아지네

그 분의 몸에서

하나님의 아들

모든 것을 희생했고

여전히 그 피는

오늘도 그 고통은

우리와 함께

붉은 강이 되어 흐르네

피와 피가 섞여서

붉은 강이 북경에서 흘러가네.

 

 

번역-이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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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2015. 3. 10. 15:27

오늘날 십자가는 종종 화려하게 장식되기도 하지만 원래는 수치스러운 상징이었습니다. 아주 긴 시간, 잔인하고, 고통스럽게 고문을 하여 결국은 죽도록 만드는 로마 시대의 사형틀, 고대 세계에서 십자가 처형이 상기시키는 사회적 충격과 불쾌함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예수님은 자발적으로 그 십자가를 자신의 자리로 - 그리고 당신의 자리로 - 취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서 피를 흘리시고,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러기위해서는 십자가가 제일 좋은 자리이셨던 것입니다. 그렇게 주님은 당신과 나를 위해 죄인이 되셨습니다.

 

토마스 아 켐피스는 말하기를 "만일 고난보다 사람의 구원을 위해 보다 낫고 유익한 그 무엇이 있다면 그리스도는 그것을 말씀으로도 알려주시고, 본을 보여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것이 없기때문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거치는 것이 되고,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5:11) 사람들이 십자가를 싫어하는 주된 이유는 십자가가 다른 모든 구원의 방법들을 정죄하기때문입니다. "다른 길은 없나니" 주님께서는 "내 십자가를 지고"라고 말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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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2015. 3. 10. 15:21

십자가를 껴안아라. (John G. Elliott)

 

십자가를 껴안아라, 주님이 고통받으신 그곳을

껴안고 너의 것이라고 하려면 많은 값을 치뤄야겠지만

네 희생은 그 보화에 비하면 하잘 것없는 것으로 여겨지리

주님이 창고에 쌓아놓으신 측량할 수 없는 영원한 보화.

 

십자가에서 껴안아라, 흐르는 그 사랑을

모든 아픔을 아시는 그 분에게 가까이 다가가

주님께 받아라, 그 분은 항상 불쌍히 여기심의 원천

오직 그 분만이 너의 마음이 자기처럼 움직이도록 조성하킬 것이다.

오 놀라운 십자가 우리의 소원은 십자가뿐이네

오 나의 주 예수님, 우리가 담대히 그리고 용기있게

부끄러움을 당하고, 모욕을 맞닥뜨리게 하소서.

주님이 어깨에 짊어지신 그 부끄러움, 그 모욕.

 

십자가를 껴안아라, 죽음에서 흘러나오는 생명

너를 위해 가신 주님의 발자국 그 흔적을 좇으라

골고다의 슬픔은 결국 텅 빈 무덤으로 이어지지,

그럼 내일이 올 때까지 참고 껴안아라, 네 고통의 십자가를.

 

십자가를 껴안아라, 십자가를 껴안아라

예수님의 십자가.

 -번역: 이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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