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3 2015. 3. 20. 09:27

유엔 천안함 성명은 한국, 중국 입장을 함께 엮은 것일 것
다음엔 6자회담 국면… 외교 실패 논쟁 말고 국론 통일, 현실 인식을
베이징에서 남쪽으로 2시간가량 고속도로를 달리면 바오딩(保定)시에 이른다. 얼른 보면 성장 중국의 활기를 잘 보여주는 인구 100만의 평범한 도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각별한 인연의 도시다. 한말(韓末) 대원군이 임오군란(1882)의 배후 주모자라는 이유로 붙잡혀 와서 언제 돌아갈지 모르는 답답함과 좌절 속에서 난(蘭)을 치며 유폐생활을 보낸 곳이다. 이홍장이 최장수 총독을 지냈던 직예총독부는 지금도 박물관으로 남아 있고 멀지 않은 곳에 대원군이 3년 동안 힘들게 거처하던 건물이 쇠락한 모습으로 서 있다.

대원군의 유폐는 당시 국론의 분열과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 각축의 잘못된 만남 때문이었다. 1882년 개혁개방의 정책 우선순위와 속도에 입장을 달리하는 척화(斥和)와 개화(開化)세력의 정치적 분열이 심화되는 속에서 대원군은 임오군란을 계기로 척화세력의 권토중래(捲土重來)를 33일 동안 시도했다. 그러나 천하질서를 주도했던 중국은 근대 국제질서의 첨병이었던 일본의 군사적 개입을 막기 위해서 군란의 중심에 서 있는 대원군을 무대에서 끌어내렸다.

120년 전 비극의 현장을 착잡한 심정으로 돌아본 다음 날 천안함 사건을 어떻게 풀 것인가에 대해 중국 전문가들과 머리를 맞대고 하루 종일 진지한 얘기를 나눴다. 세월은 흘렀건만 문제의 기본 골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사건에 대한 국론은 분열된 채 중국과 미국은 21세기 천하질서 통치경쟁의 틀에서 사건을 다루고 있다. 사태의 진전을 예상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유엔의 안보리 의장 성명은 결국 한국의 합동조사보고서 내용과 중국 정부의 공식 견해를 함께 엮어서 마련될 것이다. 동시에 한·미 합동해상훈련은 중국과 정면충돌하지 않는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다. 그리고 국면의 중심은 천안함 사건에서 6자회담 주최로 빠르게 넘어갈 것이다.

무대가 빠르게 바뀌는 속에서 한국이 해야 할 가장 급한 일은 국론 통일이다. 의장 성명 이후 유엔외교의 성공과 실패 시비로 여야가 시간을 낭비한다면 소탐대실(小貪大失)의 비극을 겪게 될 것이다. 우선 급한 것은 선(先) 천안함 사건 해결 후(後) 6자회담 대신 천안함 사건 해결과 6자회담 개최의 병행 추진이다. 천안함 사건의 사과, 관련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 약속의 지속적 요구와 함께 실질적 성과를 거둘 수 있는 6자회담의 조속한 개최를 병행 추진할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북한이 최근 김정일 위원장의 중국 방문 때까지 보여 준 자세를 넘어서 문제해결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참여다.

국론 통일의 다음 단계는 천안함 사건의 궁극적 해결이 성공적인 포스트 김정일 체제의 구축에서 비로소 가능하다는 현실 인식이다. 김정일 선군정치가 계속되는 한 제2, 제3의 천안함 사건 가능성을 배제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햇볕과 반(反)햇볕정책의 비생산적인 논쟁을 벗어나서 선군(先軍) 대신 선경(先經)정치를 기반으로 21세기 선진 국가를 건설하려는 포스트 김정일 체제의 구축을 위해서는 어떤 안과 밖의 노력이 필요한가를 진지하게 논의할 때다. 포스트 김정일 체제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눈앞에 다가왔다. 사실상 북한형 인수위원회를 가동해야 할 때다. 60여년 동안 두 번째 찾아온 귀한 기회를 선군정치의 유훈통치로 잃어버리지 않도록 도울 방도를 찾아야 한다. 이것이 진정으로 원칙 있는 햇볕정책이다.

국론통일의 마지막 완성은 남북통일을 위한 천하통일의 안목 키우기다. 대원군의 유폐부터 천안함 사건에 이르기까지 한반도 문제는 안의 문제인 동시에 밖의 문제라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안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밖의 문제를 해결할 줄 알아야 한다. 남북통일을 위해서는 구태의연한 친미(親美)와 친중(親中)의 이분법적 논쟁을 버리고 21세기 천하질서의 통치방법을 새롭게 고민해야 한다. 남북통일은 천하통일의 안목 없이는 불가능하다. 21세기 천하질서는 더 이상 자강(自彊)과 세력균형의 원칙만으로 움직이고 있지 않다. 복합적 그물망 짜기라는 새로운 원칙이 함께 움직이고 있다. 우리도 전통적 한·미·일 그물망 짜기의 심화와 함께 새롭게 등장한 한·중 그물망을 단단하게 넓혀 나가는 21세기 신(新)동맹정책을 구사할 줄 알아야 한다.

posted by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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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3 2015. 3. 13. 00:30

“김정은이 처한 딜레마는 조선 말 고종 때와 비슷”

 

 

 

 

 

“북한이 핵과 경제건설을 함께 추구하는 현재의 ‘병진론(竝進論)’이 아니라 핵을 뺀 비핵안보와 경제건설을 추구하는 ‘병진론 2’로 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한 국제적 공진(共進·coevolution)이 있어야 하며 우리가 그 중심이 돼야 합니다. 미국과 중국이 새로운 동아시아에 대한 ‘꿈(dream)’을 최근 부쩍 이야기하는데,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거대한 건축주가 자신들의 청사진을 바탕으로 동아시아 신질서를 짜나갈 때 대한민국이라는 ‘주니어 디자이너’와 함께 신질서를 짜는 것이 필요하고 중요하다는 걸 인식시켜야 합니다.”

지난 4월 23일 서울 중구 을지로 삼풍빌딩에 있는 동아시아연구원(EAI) 회의실에서 만난 하영선(66) 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서울대 명예교수)은 박근혜 대통령이 첫 정상외교 무대에 나서는 이번 방미(5월 5~10일)를 활용해 미국과 중국의 ‘꿈’을 능가하는 ‘대한민국의 꿈’을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8월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직을 정년퇴임한 하 이사장은 작년부터 국내의 대표적 ‘독립 싱크탱크’인 동아시아연구원(원장 이숙종 성균관대 교수)을 이끌어오며 한반도 문제에 대해 깊이있는 담론을 펼쳐왔다. 하 이사장은 2001년 9·11 테러 이후 국제사회를 ‘복합 변환의 세기’로 규정하며 복합 그물망(네트워크) 정책 마련을 주장해 왔다.

‘나쁜 행동에 보상하지 않으며, 헛된 약속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원칙에서 보듯 미국은 북한에 손을 내밀었다가 몇 차례 뺨을 맞은 것에 대해 굉장히 힘들어하고 아프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주목한 것은 지난해 11월 19일 오바마 대통령이 미얀마를 방문해 양곤대학에서 한 연설입니다. 당시 오바마는 ‘우리는 과거의 감옥에 갇혀 있을 필요가 없다. 우리는 미래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며 북한 지도부를 향해 ‘핵무기를 버리고 평화와 발전의 길을 택하라. 그러면 미국이 내미는 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고 밝혔습니다.

 

 1기 행정부 때 베이징에 가서 손을 내밀었다가 뺨을 맞은 후 공화당 포지션을 지난 4년간 유지하던 오바마가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북한에 첫 번째 신호를 보낸 겁니다. 하지만 북한은 이 신호에 대해서도 여전히 미사일로 답을 했습니다. 북한이 우여곡절 끝에 약속을 깨는 과정이 여러 번 진행되었기 때문에 말을 두 번 하지 않겠다는 게 미국의 입장입니다. 북한이 단순한 의미의 레토릭을 구사해서는 실질적 협상에 들어가기가 매우 어렵다는 의미입니다.”

 

하 이사장은 중국 역시 대한반도 원칙은 변한 게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중국의 대한반도 정책과 입장이 명확하게 드러난 것은 지난 2월 12일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발표된 공식 성명입니다. 당시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고, 동북아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며, 협상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3원칙을 밝혔습니다. 이러한 3원칙은 지난 3월 20일 시진핑 주석이 박근혜 대통령과 통화하면서도, 왕이(王毅) 외교부장이 지난 4월 13일 케리 미 국무장관과 만났을 때도 견지됐습니다.”

상황이 지극히 어렵지만 하 이사장이 오히려 주목하는 것은 북한의 입장 변화 가능성이다. 하 이사장은 “내가 보기에 미국이 바뀔 가능성은 없고 북한이 핵을 유지하는 한 미국이 도와줄 수 없다는 입장도 명확하다”며 “결국 미국과 중국의 원칙을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것은 북한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 지점에서 하 이사장은 북한이 최근 ‘핵·경제 병진론’을 꺼내든 배경과 함의를 주도면밀하게 따져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이 미사일을 쏜 작년 12월 12일부터 3차 핵실험을 한 2월 12일까지 내놓은 공식적 성명이나 발표를 유심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일단 이를 보면 미사일을 쏘고 핵실험을 한 자신들의 입장을 설명하는 선군(先軍) 언어가 등장합니다.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에 따라서 불가피하게, 소위 자주권의 일환으로 그런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은 선군정치를 내세운 아버지 세대 때의 설명 방식 그대로입니다. 하지만 또 한 가지 언어가 등장한다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핵무기를 개발해 이제 자주생존권을 획득했기 때문에 자신들도 경제건설이나 인민의 생활진작에 나서려 했는데, (미국이) 제재에 나서고 있다는 표현을 씁니다. 이 말은 북한도 이제 투 트랙(two track)으로 간다는 의미입니다. 내가 ‘복합론’이라는 말을 많이 했기 때문에 농담 삼아 ‘북한표 복합론’이 등장했다고 얘기하는데, 자주생존권을 위해 핵을 앞세우는 것과 함께 경제건설이라는 두 번째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공산주의 사회에서 ‘노선’이라는 것은 아무 데나 쓰는 게 아닙니다. 정책 결정의 최고위층에서 나온 것이고 이건 함부로 바꿀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자세한 경위는 알 수 없지만 김정은이 등장하고부터 노선에 대한 고민이 있었고 핵을 앞세운 비대칭적 차원에서나마 병진론이 노선으로 결정됐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입니다. 병진론을 들고나온 것 자체가 굉장히 조심스러운 변화의 시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실제 북한은 지난해 말부터 최근까지 ‘병진노선’을 계속 강조해 오고 있다. 핵·경제 병진론을 공식화한 것은 지난 3월 31일 열린 조선노동당 중앙위 3월 전원회의로, 여기서는 ‘전원회의는 조성된 정세와 우리 혁명발전의 합법적 요구에 맞게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을 병진시킬 데 대한 새로운 전략적 노선을 제시하였다’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 병진노선은 위대한 대원수님들께서 제시하시고 철저히 구현하여 오신 독창적인 경제국방 병진노선의 빛나는 계승이며 새로운 높은 단계에로의 심화발전이다’ 등의 발표가 있었다.

이에 앞서 김정은은 지난 1월 26일 ‘국가안전 및 대외일군협의회 지도’ 자리에서도 “자위적 전쟁억제력에 토대하여 이제는 인민들이 더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도록 경제건설에 집중하려던 우리의 노력에는 엄중한 난관이 조성되었다”고 말했고, 북한 외교부 대변인은 2월 12일 담화를 통해 “자위적인 핵억제력에 의거하여 경제건설과 인민생활 향상에 힘을 집중하려던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주장했다. 하 이사장은 병진론을 꺼내든 이상 북한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중대한 갈림길에 섰다고 지적했다.

하 이사장은 현재 김정은 체제가 처한 딜레마가 조선 말 고종의 딜레마와 매우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1863년 12세의 나이로 등극한 고종이 10년간의 아버지 섭정을 끝내고 친정체제에 들어간 것이 1873년입니다. 아버지가 물러났지만 체제의 운명이 걸린 개화를 결정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지금 북한의 선군정치 분위기처럼 대원군 세력이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때 안팎을 설득해 나간 게 박규수입니다.

 

안으로 고종의 귀를 붙들고 있는 그가 매일 대원군을 찾아가 일본과의 수교 필요성을 설득했습니다. 대원군에게는 ‘일본과는 구교(舊校)가 있었기 때문에 서양과의 근대 조약과 달리 구교를 다시 부활하는 것이다’라고 설득했고, 고종에게는 ‘수교하지 않으면 일본이 결국 군사력으로 해결을 보려고 할 것이기 때문에 일단 조약을 맺어 우리도 빨리 부강해질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설득했습니다. 일종의 이중 플레이를 한 것이고, 안팎으로 두 개의 싸움을 한 셈입니다. 그때 개화하는 것이나 지금 북한이 문을 여는 것이나 비슷하다고 봅니다.”

이와 관련 하 이사장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조언 형태로 다음과 같은 우리의 기본원칙 세 가지를 제안했다. “첫째는 북한이 핵을 가져도 소용없다는 느낌을 확실하게 줄 수 있도록 우리 스스로 북한의 무력에 맞서는 1차적 억지 시스템을 갖춰야 합니다. 최근 국방부에서 얘기가 나오지만 가까운 시일 내에 한국형 MD를 구축해야 하고, 재래식 무기 체계에 의한 억지력 확보에도 전력투구해야 합니다. 미국이 제공하는 전술 전략 핵 억지력도 우리가 필요로 할 때 미국이 다른 판단을 하지 않고 도와줄 수 있도록 치밀한 공조 프로세스를 구축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북을 병진론 2로 이끈다는 것이 확실한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북핵을 막아야 한다’는 막연한 목표로는 안 됩니다. 이를 위해서는 북에 대한 경제적 대응도 필요합니다. 북은 수령경제, 군사경제, 인민경제로 나눠져 있는데, 인민경제에 도움이 되는 인도적 지원은 유지하되 수령경제를 목표로 하는 금융제재와 핵 미사일 관련 물자의 컨트롤 등은 우리도 확실하게 해나가야 합니다. 병진론 1을 들고나온 북의 정치권력이 굉장한 비용을 지불한다는 사실을 느끼게 해야 합니다.

세 번째 원칙은 북이 결국 병진론 2로 가야만 북 스스로와 한국과 동아시아가 산다는 차원에서 병진론 2와 국제 공진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인식을 갖고 그런 공식에 맞는 우리의 정치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북한의 병진론 2와 전 세계적인 코에볼루션(co-evolution·공진)이 같이 가는 방향으로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우리가 이 같은 3원칙을 갖고 미국의 4원칙, 중국의 3원칙과 같이 짜여지는 334 전략으로 북을 병진론 2로 이끌어야 한다고 구체적으로 얘기해야 오바마를 설득할 수 있습니다.”

하 이사장은 “동아시아는 미국의 케리 장관이 얘기한 ‘퍼시픽 드림(Pacific Dream)’과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들고나온 ‘중국몽(中國夢)’이 충돌하는 곳으로 미국이 사용하는 말인 아키텍처, 즉 신질서의 건축이 이미 시도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과 중국의 향후 관계는 이미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로드맵이 짜여 있습니다. 싸울 것은 싸우고 협력할 것은 협력한다는 구체적 그림이 그려져 있다는 얘기입니다. 군사적으로 미·중은 2049년까지는 충돌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경제는 싫어도 협력할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같은 부분에서는 상당한 경쟁적 요소가 등장한다는 데 대해 의견이 모아진 상태입니다.

 

이런 미·중 관계 속에서 우리는 G2의 꿈이 아닌 우리의 꿈을 꿔야 합니다. 이제 세계는 강대국이 질서를 단독 디자인하는 시대는 지났고 주니어 디자이너와 공동 파트너십이 있어야 새 시대를 열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해야 합니다. 동아시아의 신질서는 미·중을 넘어서서 복합 네트워크로 짜야 합니다.”

 

하 이사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는 그런 차원에서 우리의 꿈을 이야기하는 첫 무대가 되어야 한다”며 “거대한 꿈을 꾸는 G2의 틈바구니에서 경제력과 군사력이 떨어지는 우리로서는 더욱 더 충실히 꿈을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료 :  조선일보(정장열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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