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2015. 5. 6. 00:32

한경직 목사님은 “주변성”을 지니고 사신 분이었습니다한경직 목사님은 처음부터 가난한자 병든 자 소외된 자들을 찾아가는 “주변지향적” 삶을 살았습니다성 프랜시스의 영향이라고 생각합니다한경직 목사님은 1932년 귀국 후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신의주를 첫 목회지로 선택했고 1933년 신의주 제2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하면서부터 가난하고 약한 자들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나타내 보였습니다그는 1936년경 고아원을 설립하여 고아들을 돌보기 시작했습니다. 1939년에는 고아들과 노인들이 함께 기거할 수 있는 ‘보린원’을 만들었습니다정진경 목사님은 약한 자들과 함께 한 한경직 목사님의 삶을 이렇게 요약했습니다. "그의 삶의 자세는 예수님과 같이 눌린 자의 편에 섰고가난한 자의 친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사회에서 버림받은 자소외되고 병든 자외로운 자의 벗이 되어 사셨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은 인생의 삶을 지탱해 주는 세 가지가 믿음 소망 사랑이라고 항상 강조하면서도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랑이라고 강조했습니다가난하고 약한 자 그리고 원수들에게까지 사랑을 베풀며 사는 것이 인간의 가장 가치 있고 보람된 삶이라고 강조하며 그렇게 살았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의 관심과 사랑은 민족과 나라에 국한하지 않고 일본과 북한과 아프리카를 포함한 세계에 미쳤습니다한경직 목사님은 평생 한국 나라와 한국교회를 사랑하고 봉사한 분이었지만 동시에 민족주의나 국가주의를 넘어서서 세계를 품고 사랑하며 봉사한 분이었습니다

posted by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
: